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북한의 2009년 화폐개혁 (문단 편집) == 개요 == [[북한]]에서 [[2009년]] [[11월 30일]] 오전 11시부터 기습적으로 자신들의 화폐인 [[북한 원]]에 대해 벌인 '[[화폐개혁]]'. 구체적인 내용은 11월 30일부터 12월 6일까지 구권 100원을 신권 1원으로 교환하는 것이다. "교환 자체"는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써 전혀 문제가 없지만, "교환 가능한 금액을 세대당 10만원으로 한정"하고, 나머지 금액은 "은행에 맡겨야 하는" '''이상한''' 규칙이 북한 사회에 상당한 충격과 공황을 발생시켰다. 그리고 이 사건 덕에 북한 주민은 자기 나라 돈을 더더욱 믿지 못하게 되었다. 북한에서 [[은행]]에 돈은 맡긴다는 것은 곧 '''국가에 돈을 바치는 것''' 이라고 보면 된다.[* 사실 인출 가능액을 '''한동안''' 제한하는 것은 일시적 조치까지 생각한다면 [[개발도상국]]에서 꽤 있는 일이다. 당장 한국에서도 1953년과 1962년 화폐개혁때 은행 예금의 인출을 제한했다. 그러나 북한은 단순 인출제한을 하는 것이 아니다. 주민이 맡긴 돈이 어느 정도 모이면 '''혁명에 필요한 자금이 모자라니 국가에 헌납하라'''며 예금한 돈을 몰수하고 항의하면 반동분자로 몰아 수용소로 보내니 돈을 뺏기기 싫은 주민들은 은행에 맡기지 않고 집에 모아두는 걸 선호했다.][* 다만 한국의 1953년 화폐개혁은 전시였고 1962년 화폐개혁은 불과 1주일만에 인출제한이 풀렸다.] 북한의 은행은 예금 인출을 '''영구적으로''' 제한하기 때문이다. 다만 2018년 이후 지금은 상황이 좀 변했다. [[박봉주]]가 이끄는 경제개선조치 이래 북한의 은행도 제법 정상화가 이루어진 듯 한데, 예금의 인출은 물론이고 전자카드를 도입하고 다른 지역으로 외환 송금까지 가능해졌다고 한다. 이로 인해 [[http://www.bluetoday.net/news/articleView.html?idxno=12058|북한 최초의 은행강도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다만 이렇게 전자카드로 사용 가능하며 은행들이 비축한 돈들은 내화가 아닌 달러화임을 주의해야 한다. 북한 특권층들은 북한 화폐를 믿지 않아 이미 [[금(원소)|금]], [[미국 달러|달러]], [[유로]]화, [[위안]](元)화 등으로 재산을 모아 왔으며, 돈주들도 위안화나 달러화로 거래를 해 큰 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현금을 더 많이 가지고 있던 시장 장사꾼들이 피해를 입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곧 [[외환]] 거래가 금지되며 특히 중국으로부터의 ~~밀~~수입은 사실상 중단되었다. 2000년대에 북한 내 노동자 1명당 보통 100만 원을 초과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었다.[* 당시의 100만 원은 암시장 환율로 1000 USA 달러와 비슷한 가치였다.] 주민들 입장에선 나름대로 노력해 모은 돈을 두 눈 멀쩡히 뜨고 빼앗기는 꼴이 된 셈이다. 그리고 북한 원이 휴지조각이 되는 일이 발생. 한편으론 김정은이 김정일의 후계자로 공표되는 과정에서 벌인 일이 이 화폐개혁이었는데 실행 이후 채 1년이 안 되어 북한 경제를 사실상 '''박살을 내고''' 끝나자 위기감을 느낀 김정은 측이 '''천안함 폭침'''을 계획했다는 말도 있었다. 도저히 '''개혁'''이라는 말을 붙이기가 민망한 개악(改惡)이다보니, 많은 연구자들이 "화폐교환"이라 부르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